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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01 대학언론의 효시 <고대신문> 창간(1947~1950)

대한민국 대학신문의 효시인 고대신문은 1947년 11월 3일 광주학생사건 기념일인 '학생의 날'을 기해 창간됐다. 민족해방의 희열과 독립국가 탄생의 진통이 교차하던 40년대 후반 고대신문은 '역사적인 것, 비논리적인 것의 본질 파악'과 '진리와 인격의 일원적 탐구 연마'를 취지로 탄생했다.

02 포화속에 신문을 발행하다 (1951~1955)

전쟁의 와중에 고려대학교가 대구에서 임시 개교하면서 고대신문도 2년만에 속간호인 제15호(1952년 2월 4일자)를 발행했다. 피란 개교 5개월만에 발간된 이 속간호는 신문부원들의 맹활약과 학교의 지원과 교우들의 찬조로 결실을 보았다. 이는 고난 속에서도 결코 위축되지 않는 고대의 끈질긴 생명력과 불굴의 투지를 상징한 사건이었다.

03 지성의 분화구를 폭발시키다 (1956~1960)

1960년도 졸업식과 입학식에 즈음해 여러 편의 기념비적인 사설이 실렸다. 졸업생에게 주는 사설'낡은 사회에 신선한 피를 수혈하라'와 신입생에게 주는 사설 '우리는 행동성이 결여된 기형적 지식인을 거부한다'가 그것이다. 이 두 사설은 학교당국의 사후검열에서 과격한 용어와 문구가 수정·삭제됐다. 그러나, 3·15부정선거 이후 고등학생의 항의시위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독재정권에 대한 고대생의 저항의식에 불을 당겼다.

04 가상재판, 석탑축전의 꽃이 되다 (1961~1965)

1960년대에는 수 많은 학생기자들이 고대신문사를 거쳐갔다. 그들은 본교 서관 3층 편집실과 광화문 분실을 오가며 누구보다도 높은 긍지를 품었다. 그리고, 젊은 날의 꿈과 낭만, 사회현실과 대학의 학풍에 대한 고뇌와 비판의식을 지면에 담아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문필로 대학사회의 이념적·정신적 지주임을 자부하면서.

05 <월요일의 고대신문>으로 지령 500호를 맞다 (1966~1970)

학생독자에게 친밀히 다가서는 기획논단을 1면에 게재하기 시작했다. 졸업호와 개강호에는 졸업생과 신입생에게 주는 학계 원로의 중후한 글로 좋은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아울러 학술논문 뿐만 아니라 특정 주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기획좌담으로 주제의 균형감과 편집의 신선함을 드러냈다.

06 <지성과 야성>의 시대에 불씨를 지키다 (1971~1975)

1970년대의 살벌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참된 지식인'은 좌절하거나 침묵과 순종에 길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끊임없이 민주 회복을 외치며 자기를 희생하며 끈질기게 독재정권에 저항했다. 1973년 10월 국내 대학신문 최초로 매주8면 발행을 시작하면서 '진정한 지식인들의 전성시대'에 소중한 민주주의의 불씨를 지켰다.

07 세계에서 돌파구를 찾다 (1976~1980)

암담한 시대상황에서 새로운 활로를 고심한 끝에 대학언론사상 처음으로 '해외 취재'를 시도했다. 1979년 3월 6일자 829호 제 1면 머릿기사 '세계인의 고대인'은 현장 리포트와 화제의 고대인 소개, 취재 낙수 등으로 다채롭게 구성됐다.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주베일·리야드, 쿠웨이트, 바레인, 자카르타, 홍콩, 싱가포르 등을 연재했다. 매 호마다 세계 각 지역의 문화 양식, 교우회 근황과 활약상이 소개됐다.

08 편집을 가로쓰기로 바꾸다 (1981~1985)

성공적인 가로쓰기 신문을 탄생시키기 위해 구미지역의 신문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대학신문의 실정에 적절한 본보기가 되도록 수개월간 분석과 토론을 거듭했다. 당시 몇몇 대학언론이나 기성언론들이 적용하던 가로쓰기는 세로쓰기를 단지 옆으로 뉘어놓는 차원이었다. 학생기자들은 이와는 차원이 다른 가로쓰기 나름의 독자적인 편집원칙을 확립하겠다는 의지로 충만했다.

09 투쟁을 마치고 홍역을 치르다 (1986~1990)

5공화국 시절의 고대신문은 월요일 아침 시험인쇄본이 학생회관2층에서 각 부서의 기관원들에게 검열을 받았다. 그러나, 민주화를 향한 국민적 저항에 함께하며 학생기자들은 열정은 배포금지를 넘어 신문밖으로 넘쳐났다. 외압이 사라지면서 원고의 사전 검토를 주장하는 주간교수와 편집 자율권을 요구하는 학생기자들 사이에서 갈등이 오랫동안 계속됐다.

10 혁신의 노력속에 안정을 찾다 (1991~1995)

1990년대의 세계구도의 변화에 따라 독자들의 요구는 더 다양해졌다. 학생기자들은 이를 반영하기 위해 부단한 '매체혁신'의 노력을 펼쳤다. 보도면을 신문의 앞부분으로 옮기는 지면 개편을 단행하고, 취업 특집판도 발행했다. 또한, 일련 사내사태로 위축됐던 제작능력에서 벗어나 1994학년도 2학기부터 주간 12면 발행이 정착됐다.

11 주제탐구로 분수령을 이루다 (1996~2002)

1995년부터 기존의 백화점식 정보나열에서 벗어나 테마 중심의 주제탐구형으로 전환했다. 관성적인 편집형태와 기성 일간지를 흉내내려는 타성에 종지부를 찍고 대학신문의 새로운 전형을 창출하려는 부단한 실험정신이 바탕에 있었다. 제작방식도 컴퓨터의 보급에 맞춰 점차 전산화되기 시작했다.

12 인터넷으로 대학언론의 선두에 나서다 (2003~내일)

인터넷 매체의 등장은 대학 사회에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공간과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대응해 독자리포터제의 운영과 뉴스레터 서비스, 생활정보와 웹진을 가미한 온라인 뉴스사이트 운영으로 대학언론의 변혁을 선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