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쟁한 ‘인디 뮤지션’들이 모였다는 홍대에도 음반제작의 모든 과정을 가수 스스로 하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싱어송라이터 오지은(문과대 서문00)씨는 팬들에게 모금 받아 스스로 작곡, 연주, 노래녹음까지 도맡아 첫 번째 앨범을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었다. ‘건반으로 할 수 있는 락음악의 극한’에 가보고 싶었다는 그녀. 절제된 멜로디와 솔직한 가사는 소리 소문 없이 20대 팬들을 사로잡았다. 한 팬이 ‘20대의 조금은 위태로운 열정과 그 사랑스러움이 얼마나 강렬한 매력을 품고 있는지를 느끼게 해주는 힘이 있다’고 평가했을 만큼 그녀의 음악은 20대 감성 그 자체를 표현하고 있다.

‘인디계의 김태희’라고 불리는 그녀의 매력은 별명과는 어울리지 않는 털털함이었다. 다른 무엇도 아닌 그저 ‘오지은’그 자체로 바라봐줬으면 좋겠다는 그녀에게 그녀의 인생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학시절이 궁금해요.
한마디로 ‘쓰리고 제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어요.(웃음) 좋은 대학에 입학하면 살고 싶은 대로 살아도 좋다는 부모님의 말씀에 고대에 입학한 후 정말 ‘멋대로’ 살았어요. 밤에 바에서 알바하고 싶으면 해버리고, 그럼 잠을 못자고 수업을 못가잖아요. 학교 공부에 흥미도 없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제적을 당하게 됐죠. 사실 그 때 한 교수님이라도 D+을 주시면 제적을 면할 수 있어서, 가서 사정을 할까 3일 동안 고민을 해봤어요. 그런데 이번 학기에 제적을 당하지 않더라도 그 다음 학기 역시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을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그냥 제적 당했죠. 그리고 일본에 어학연수를 가서 외국인 노동자처럼 살기도 하고. 일본에서는 삼각 김밥 집에서 일했었는데, 그 때 제가 20kg을 들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웃음) 하지만 재입학해보니 서문과에 재미있는 수업이 많더라고요. 점점 학교 공부에 재미를 붙이게 됐어요. 특히 문학이 좋아요. 문학이 사람 사는 얘기라서 음악이랑 통하는 게 있거든요. 철학 공부를 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도 기를 수 있었고요.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시는 것 같아요
스무 살 때 청담동의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어요. 돈 많은 사람들이 와서 비싼 술을 마시는 곳이었는데, 그런 사람들이 모두 불행해 보이는 거예요. 그 때, 어디론가 상승하려고 하는 게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았죠. 고등학교 때도 IMF 때문에 잘 살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망하고 그랬었잖아요. 그 때 그게 정말 허무해 보였어요. 그래서 그냥 ‘빚만 없으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웃음) 지금 상태에 만족하는 게 행복해지는 지름길인 것 같아요. 일본에 갔을 땐 많이 아프기도 했고, 자비가 없어서 걸어 다니기도 했어요. 근데 지금은 돈이 없지도 않고, 음악을 하고 있고, 그 음악을 좋아해주는 사람도 많잖아요. 지금 이 순간이 어찌 보면 기적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일상이 소중해요. 언제 뺏길지 모르는 게 일상이잖아요.

언제부터 음악이 좋았나요?
언제부터 음악을 좋아하기 시작했다기 보다는 그냥 날 때부터 음악과 함께 자랐다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아버지가 음악을 하셨었어요. 기어 다니던 시절에 아버지가 기타 연주를 해줄 때 싫어하는 음악이 나오면 기타를 잡았어요. 그러면 아버지가 손을 움직여서 계속 연주했던 게 음악에 대한 최초의 기억이에요. 매끼 밥 먹으면서 ‘언제부터 밥을 좋아했어?’라고 묻는 게 이상한 것처럼. 어렸을 때부터 산울림, 아바, 비틀즈를 동요처럼 듣고 자랐어요.

2005년에 처음 음악으로 돈을 벌었다던데
네이버 블로그 이웃의 애니메이션 엔딩 곡을 만들어 주게 돼서 처음 음악으로 돈을 벌었죠. 그런데 그게 데뷔라고 할 수는 없어요. 처음 홍대에서 공연한 건 중학교 3학년 때였거든요. 그때는 나우누리의 음악 동호회에 가입해 있었는데 중학생이니까 오빠, 언니들이 많이 예뻐해 줬어요. 73년생 오빠들과 함께 공연을 하기도 했었죠. 그 때 자작곡도 반응이 좋아서 홍대에서 열린 축제 때 헤드라이너가 돼서 12곡 정도 불렀던 것 같아요.

인터넷에 방에서 직접 곡을 연주하는 ‘방 라이브’ 영상들이 많던데
저는 곡을 보통 새벽 3~4시에 써요. 곡을 쓰면 누군가에게 빨리 들려주고 싶은데, 그 때 깨어있는 사람들은 외국에 사는 친구들 밖에 없잖아요. 그 친구들과 mp3 파일을 주고받기엔 속도가 느리니까 동영상을 You-tube에 올리게 됐어요. 얼굴도 보여주면 좋잖아요. 그렇게 하다가 내 홈페이지에 방문하는 사람들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홈페이지에도 올리게 됐죠.


그녀의 홈페이지(http://ji-eun.com)에는 그녀가 혼자 앨범을 제작했던 과정이 일기처럼 적혀 있는 ‘186일간의 앨범제작 분투기’라는 글이 있다. 말 그대로 혼자서 앨범을 제작한다는 것은 ‘분투’에 가까웠다.

‘186일간의 앨범제작 분투기’를 쓰게 된 이유는
혼자 앨범을 만드는 건 너무 외로운 과정이었어요. 글을 써서 나누면 소통할 수 있잖아요. 그냥 ‘이건 이런 거였어’ 라고 설명해주고 싶었어요. 어떤 과정으로 내가 음악을 만들었는지 나 자신에게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고요. 저도 지금 보면 아마 신선할걸요. 그 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심지어 대상포진이라는 병에 걸렸었어요. 물론 맨땅에서 시작했으니까 퀄리티가 압도적으로 좋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가진 기대치 자체가 없으니까요.

혼자 앨범을 제작한다는 게 용기가 필요했을 텐데
저는 머릿속에서 곡이 저절로 나와서 쓰는 타입이거든요. 다르게 표현하자면 ‘곡이 흘러넘쳐서 어쩔 수없이 주워 담는 스타일’이랄까? 예를 들면 누구랑 헤어져서 너무너무 슬프면 가사가 막 생각이 나요. 그 가사를 울면서 종이에 써요. 그런데 묘하게도 다듬는 과정에서 냉철해져요. 슬픔을 쏟아 붓는 과정에서 객관화가 되는 거예요. 실제로 ‘Wind Blows’라는 노래는 전 남자친구랑 통화하고 나서 너무 슬퍼져서 커피숍 구석에서 엉엉 울면서 썼던 곡이에요. 그런데 그 슬픔도 가사로 정리하면서 냉철해졌어요. 그런 식으로 곡을 쓰다 보니 곡이 12개가 쌓인 거죠. 그런데 이걸로 앨범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저한테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에요.

(사진=박지선 기자)

널 생각하면 목이 말라 아무리 마셔도 갈증이나 언제나 널 생각하면 약이 올라 영원히 가질 수 없는 보물처럼 난 널 보고 있으면 널 갈아 먹고 싶어 하지만 그럼 두 번 다시 볼 수 없어 나의 이성 나의 이론 나의 존엄 나의 권위 모두가 유치함과 조바심과 억지 부림 속 좁은 오해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니까 사랑이란 이름 아래 저주처럼
-오지은의 ‘화(華)’ 중에서

가사가 솔직하고 쿨한데
사랑에 대해서 아름답다고만 얘기하는 건 판타지 같아요. 때론 불편한 진실도 필요하잖아요. ‘나는 너를 영원히 사랑할거야’라고 말하는 순간 그 말이 거짓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평소 생각했던 걸 전부 다 솔직하게 꺼내봤어요.

지은씨는 ‘20대의 감성을 대변한다’라는 평을 듣기도 하잖아요. 이런 감성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일상’인 것 같아요. 저는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상처도 많이 받아요. 그런데 그 사람에 대해서 오해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 상처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아무것도 아닌 일로 치부해버리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남들에게 피곤하게 산단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저는 그렇게 사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노래는 나에게서 나오는 건데, 내가 제대로 된 사람이어야 내 노래가 제대로 나올 거라는 생각을 해요.

가장 음악을 들었으면 좋겠다는 청자가 있다면
사랑을 하고 있는 여자들이요. 여자들이 제 노래를 듣고 공감해준다고 할 때 기뻐요. 특히 연애를 하고 있다든지 연애가 끝났다든지 해서 음악이 뼈에 사무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듣고 ‘이번 연애가 끝났는데 ‘화(華)’를 백번 넘게 들었어요, 들으면서 밤새 울었어요’라고 말해주면 너무 좋아요. 내 음악을 누군가가 소중하게 사용해주고 있는 느낌이 들거든요. 제 노래가 평범한 여자아이들에게 있어 BGM이 될 수 있으면 기쁠 것 같아요.

그렇다면 지은 씨는 어떤 사랑을 하나요?
진한 사랑을 해요. 너무 많이 그 사람에게 내 자리를 내줘버리죠. 하지만 이번 2집에 들어가는 가사 중에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날 사랑하고 있다는 너의 마음을 사랑하고 있는 게 아닌지’라는 가사가 있어요. 제가 누군가를 죽을 만큼 사랑했다고 해도 사실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잔인한 생각이 들기도 해요. 사실 누굴 죽도록 사랑한다고 해도 헤어지면 다른 사람을 만나잖아요. 어쩌면 그 사람이 아니라 그런 나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해요. 한 사람한테 흠뻑 빠지는 건 기쁜 일이니까요.

지금은 남자친구가 있나요?
있어요. 지난 겨울에 제가 엄청 고민을 했어요. 여태까지 나의 사랑이 잘못된 게 뭐고, 어떤 사랑을 해야 하나. 저는 언제나 사랑을 진하게 하는 대신 푹 빠져버려서 끝내 불나방처럼 타버리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예전과 다르게 좀 더 잔잔하게 사랑을 하는 것 같아요. 강렬하지는 않아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그저 같이 있으면 좋은 사랑이요. 지금은 그와 같이 있을 때 착하고 귀여워져요.


꿈이 있냐는 마지막 질문에 그녀는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간단히 대답했다. “매 순간 완벽할 수는 없지만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거죠.”
그녀를 만난 후 “오지은은 오지은이다”라는 말이 뜻하는 것이 뭔지 조금은 더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꾸밈없는 노랫말이 더 매력적으로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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