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는 국어사전을 ‘시를 읽듯이’ 읽는다고 하면서, <혼불>에서 그토록 살뜰하고 풍부하게 나오는 토속어들도 늘상 사전을 옆에 두고 익힌 결과라고 고백하였다. 사전은 이처럼 문인을 살찌울 수 있는 문화적 총화이다. 어떤 민족이나 나라가 훌륭한 국어사전을 가졌다면 그만큼 그들은 뛰어난 문화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영국의 옥스퍼드 사전이나 도이치의 그림 사전, 프랑스의 로베르 사전 등은 모두 그네들의 자부심이다. 동양에서도 일찍부터 사전류에 관심을 많이 가졌으며, 우리나라도 오래 전부터 사전을 편찬하고 일상생활에서 이를 사용해 왔다.

국어사전의 개념과 범위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지만, 넓은 의미의 국어사전 편찬은 외국인이 우리말을 전사한 고려 시대 중엽의 대역 어휘집 <계림유사>부터 꼽을 수 있다. 그 이후 한자와 관련하여 우리말을 대응시킨 사전들이 조선 시대에 들어 다양하게 나왔다. 여기에는 한자의 음을 밝힌 운서류(<삼운통고>, <동국정운>, <사성통해>, <전운옥편> 등), 한자나 한문의 학습용 자석류(<천자문>, <훈몽자회> 등), 통역관들의 외국어 학습을 위한 유해류(<역어유해>, <왜어유해>, <동문유해>, <한청문감> 등), 주위 사물들의 명칭을 유형별로 분류하여 목록화한 물명류(「재물보」, 「물명고」 등)와 백과사전류(<지봉유설>, <대동운부군옥>, <고금석림> 등) 그리고 이두의 용법을 정리한 이두 사전 등이 있다.

이러한 전통적인 어휘집은 대개가 한자, 한자어, 외국어를 정리하거나 익히기 위하여 그들 어휘를 올림말로 두어 만들어진 대역사전의 성격으로, 대부분이 올림말의 음이나 의미에 따라 분류하여 배열하는 분류집인 유서(類書) 형식을 가졌다. 유서 가운데 올림말이 우리말을 다룬 것이라면 표기 문자나 저자, 발행지와 상관 없이 넓은 의미의 국어사전에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분류 어휘집의 성격을 가지는데, 문헌에 따라 올림말의 규모에 차이가 많으며 대응어의 제시나 풀이도 아주 간략하다.

근대 전환기(개화기)에 들어서는 외국어 올림말에 대한 우리말 대역사전들이 주로 외국인에 의해 나왔다. 푸칠로의 <노한사전>(1874)에서 시작된 대역사전은, 서구의 영향으로 사전적인 형식이나 규모가 이전과 크게 달라져 오늘날 사전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 외에 <한불뎐>(1880), <한영뎐>(1897) 등과, 우리나라 사람이 만든 <국한회어>(1895)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풀이말이 소략하거나 대응어를 보인 정도여서, 아직까지는 국어사전의 태동을 위한 준비였다고 말할 수도 있다.

드디어 우리말로만 이루어진 순수한 국어사전이 1910년 <말모이> 편찬으로부터 시작되었고, 문세영의 <조선어사전>(1938)은 본격적인 국어사전 시대를 열었다. 광복 직후 한글학회 <큰사전>(1947-1957)을 비롯하여 신기철·신용철 <표준국어사전>(1958), 이희승 <국어대사전>(1961) 등의 국어대사전이 잇달았다. 최근에는 사전 편찬에 대한 연구도 활발해지고, 김민수 외 <국어대사전>(1991), 한글학회 <우리말큰사전>(1992)과, 국어연구원 <표준국어대사전>(1999) 등 완성도가 높은 국어대사전이 나오고 있다. 이들 사전에는 40-50만 개 정도의 올림말을 담고, 뜻풀이와 용례도 자세하게 분류 정리해 놓고 있다.

북한에서도 <조선말사전>(1960-1962)에 이어, <현대조선말사전(제2판)>(1981), <조선말대사전>(1992, 2007) 등이 사회과학원에서 나왔다. 해외에서는 중국 연변에서 나온 <조선말 사전>(1992)과 일본에서의 <조선어 대사전>(1986)을 꼽을 수 있다.

근래에는 동의어사전, 뉴앙스사전, 분류사전, 역순사전, 어절사전, 전자사전, 웹사전 등 다양한 종류의 국어사전과 각 분야의 전문어사전들이 나오고 있다. 국어 코퍼스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든지 사전 편집기를 사용하는 등 새로운 편찬 방식이나 시스템이 도입되고 있다. 그러한 성과 가운데 하나가 이번에 출간하는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이다.

21세기에 들어, 남·북의 국어학자와 사전 편찬자들은 조국 통일을 앞두고 남북 통합 사전을 함께 만들고 있다. 2005년부터 시작된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이 그것으로, 민족의 진정한 통일은 언어에 의해 촉진되고 완성된다는 믿음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2013년 완간을 목표하고 있다. 국토 분단으로 다소 달라진 남과 북의 우리말이, 이러한 통합 사전의 편찬과 양측 언중들의 실천 의지로 이전보다 오히려 다양하고 풍성해져, 우리나라 전체에서 다함께 쓰이는 국어로 발전하리라 기대한다.

홍종선 (문과대 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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