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는 언젠가 노인이 되고 노인도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럼에도 세대 간의 갈등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 하물며 남성과 여성은 서로의 삶을 살아볼 수도 없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며 인류의 역사를 써왔지만 아직까지도 상대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의 부족에서 발생하는 양성의 갈등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각기 다른 성(性)을 가지고 모두가 조화로운 사회과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다른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스스로 ‘찌질하다’고 말하는 단체가 있다. 하지만 그들이 고대하는 이상은 결코 찌질하지 않다. 그들은 남성과 여성의 조건을 계량해 결혼을 하는 계산적인 평등보다 못난 사람과 잘난 사람의 사랑이 이뤄질 수 있는 ‘균형’을 원하는 남성연대다. 지난 3일 창립 1주년을 맞은 ‘걸음마를 시작한 사내’ 국내 유일 남성운동 단체 남성연대 성재기 대표를 만나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남성차별은 어떤 것들이 있나
남성에 대한 성차별적 시선들이 사회 곳곳에 무분별하게 퍼져있다. 남성연대가 대중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계기는 영화 ‘너는 펫’ 상영가처분 신청 때였다. 이 영화는 남성을 개, 여성을 주인으로 설정했다. 만약 여성이 개, 남성이 주인인 시나리오가 있었다면 그것은 애초에 영화로 기획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상영가처분 신청은 기각됐지만 관객의 즐거움과 영화 흥행을 위해 누구의 인격도 모욕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여성가족부는 ‘화이트 타이’라는 성매매 근절 캠페인을 2005년부터 펼쳐왔다. 매매춘을 하는 여성들을 피해자로 설정해 자활 명목으로 금전 지원을 하고, 남성은 가해자 혹은 잠정적인 매매춘 수요자 설정했다. 여성가족부에게 묻고 싶다. ‘그렇다면 여성은 잠재적인 매매춘 공급자로 정한 것인가’ 매매춘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을 무조건 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또한 한 기업은 ‘남편보다 좋은 이벤트’라며 400만 원짜리 핸드백을 1등 상품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가족의 구성원인 남편의 가치보다도 명품 핸드백이 ‘좋다’는 기업의 발상에 즉각 시정을 요구해 기업 측에서 이벤트 이름을 바꾼 경우도 있다.

남성운동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편파적인 여성가족부의 정책에 공식적으로 이견을 제시하고 남성에게는 자기 개념을 깰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에는 남성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여성들이 많은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과거 여성들이 지켜야 했던 규율이나 문화적 터부도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은 ‘사회적 약자’로 구분되어 다양한 혜택을 누린다. 여성가족부는 설립된 이래로 양성평등을 위해 꾸준히 여성권익 신장만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있다. 여성의 이익만을 충족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공정한 성문화를 만들 것이라는 기대는 착각이다.

남성 본인들도 자신에게 그릇된 굴레를 씌우고 있다. 500명을 대상으로 우리가 직접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여성보다 약자가 될 수 있다’는 문항에 ‘그렇다’고 답한 남성은 단 한명도 없었다. 사실 남성이 여성보다 객관적으로 잘난 것은 물리력이 강하고 신체 발달이 크다는 것뿐인데도 ‘남성은 여성보다 강하다’는 지배적인 통념으로 자기 자신을 묶는 것이다. 그러니 남성들은 자신들이 바라는 바를 상대적 약자로 생각하는 여성에게 요구하는 일을 ‘수치스럽게’ 느끼게 된다.

우리나라의 여성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여성주의의 뿌리는 18세기 유럽이다. 당시 유럽의 여성은 남성과 분리됐을 뿐 아니라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부터 고된 신체적 노동까지 해야 했다. 자연스레 남성에 대한 저항의식이 생겨 태어난 것이 여성주의다. 서구 유럽 여성들의 반발 심리로 탄생한 페미니즘이 우리나라 대학가에서 유행을 한 것은 1990년대였다. 문화적 차이가 있는데도 별다른 수정 없이 유입된 페미니즘은 여대생들에게 ‘가정을 꾸려 아이를 낳는 것은 행복이 아닌 착취’라고 가르쳤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의 여성이 자유롭게 사회진출을 할 수 없었던 것은 맞다. 하지만 남편은 집안의 일에 대해서는 아내를 존중하고 사소한 일이라도 아내의 허락을 구했다. 서구와 사회 환경이 전혀 달랐다는 의미다. 남성의 노예였던 여성들의 보복 심리를 대변하는 서구의 페미니즘이 우리나라에 그대로 전달된 것은 오류일 수밖에 없다. 다른 문화권에서 발전한 이론을 비판 없이 받아들인 결과 지금 우리나라의 여성운동도 ‘끝없는 여성 권익 신장이 양성평등을 이룬다’는 비논리로 흐르고 있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남성은 자신을 압박하는 사회적 통념을 되돌아봤으면 좋겠다. 또한 여성들은 남성을 돌아보고 이해해주길 바란다. 양성이 산술적으로 똑같이 평등해져야 한다는 논리보다 서로의 단점을 보듬고 이해하는 합리적인 ‘균형’을 도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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