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한의과대학 학장실, 두꺼운 동의보감을 읽고 있는 김남일 교수를 만났다. 한의학을 공부한지 수 년. 읽고 또 읽었으나 문맥의 깊은 이치는 볼수록 새롭게 다가온다. 김 교수는 2009년 동의보감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는 데에도 큰 기여를 했다. 그에게서 동의보감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긴 세월동안 한국 전통의학의 교과서로 활용되는 동의보감의 우수성은 무엇인가
“동의보감은 여러 계파의 학설을 하나의 체계로 엮어 낸 백과사전적 편집체계가 우수하다. 이 덕분에 몸의 부위, 질병의 원인 등에 따라 의학 지식을 간편하게 꺼내 읽을 수 있다. 또한 의학적 내용뿐만 아니라 철학, 문학, 역사 등 동양 사상이 총체적으로 반영돼 있다는 것도 동의보감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 동의보감이 비과학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동의보감에는 투명인간이 되는 방법인 은형법(隱形法), 귀신보는 법, 잉태중인 여아를 남아로 바꾸는 전녀위남법(轉女爲男法) 등이 실려 있는데 이를 두고 비과학적이라고 비판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는 허준 선생이 동의보감에 동양의 신비한 사상과 철학을 녹이려했던 노력에서 비롯된 작은 부분이다. 동의보감을 과학적인 검증의 대상으로만 축소시켜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 동의보감만이 가지는 독창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동의보감은 허준이 15년간 230여 종의 의서를 집대성하여 만든 책이다. 특히 중국 의서의 내용이 많이 차용돼 있기에 일각에선 독창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허준 선생은 중국 의서의 내용을 자신의 독창적 관점을 바탕으로 내용을 ‘재구성’했다. 내경편, 외형편, 잡병편, 탕액편, 침구편으로 이어지는 목차나 병을 분류하는 방식 등은 기존의 의서에서 볼 수 없던 것이다. 예컨대 동의보감에서는 허리 통증을 원인에 따라 열 개로 분류하고 처방을 원인 하나하나에 연계시킨다. 양의학에서 엑스레이나 MRI 등으로 찾아낼 수 없는 허리통증이 많은데, 이 경우 동의보감의 열 가지 분류체계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 동의보감은 현대의학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가
“처음 허준이 만든 동의보감을 이 시대에 그대로 활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동의보감은 1613년에 완성되고 끝난 것이 아니라 400년 동안 끊임없이 진화·발전해 왔다. 동의보감을 부정한 학파, 비판적으로 계승한 학파, 동의보감을 바탕으로 새로운 방법론을 개발한 학파 등 수많은 견해가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전통의학을 연구하는 사람 중 동의보감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사람은 거의 없다. 즉, 동의보감은 긴 세월 동안 다양한 견해를 받아들여 발전했으며 현재 우리나라 한의학에 깊숙이 내재돼 있다고 볼 수 있다”

-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동의보감 구절이 있다면
“동의보감에 ‘욕치기질 선치기심’(欲治其疾 先治其心) 이라는 말이 있다. 병을 치료하고자 하면 먼저 마음부터 다스려야 한다는 뜻이다. 동의보감의 내용을 포괄하는 핵심적인 말이다. 모든 질병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마음 심(心)’자는 유형의 심장과 무형의 마음을 동시에 지칭한다. 심장 속에 있는 신(神)의 흐름이 감정인데, 이것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면 육체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동의보감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항상 마음을 편히 가질 것을 강조하는 ‘수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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