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농성 5일째에 이른 오늘(24일), 학생들은 본관 앞에서 ‘징계철회’를 위한 2차 항의집회를 열었다. 조정식(법과대 법학02)씨의 사회로 진행된 오늘 집회에는 70여명의 학생들이 참여해 징계철회에 대한 의견을 표출했다. 조 씨는 “몇몇 처장분들이 천막농성 상태를 확인하고 갔다”며 “어윤대 본교 총장도 출장 갔다 학교에 돌아온 것을 차량을 통해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자신들의 요구에 대한 학교측의 대답이 일절 없다고 덧붙였다.

 오진호(문과대 한국사03)씨는 자유발언에서 “실제로 천막농성을 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며 “부모님과 친구들의 지지덕분에 계속할 수 있으므로 앞으로도 많이 격려해 달라”고 말했다. 이어 졸업생인 백은진(역사교육과 96학번)씨는 “‘부당한 징계에 반대하는 고려대 졸업생들’이라는 네이버 블로그에서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성명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오는 26일 한겨레 신문에 징계에 반대하는 광고를 실을 예정이다.

 집회를 주최한 학생들은 집회 참석자들에게 소자보를 나눠주며 각자의 의견을 적어 식당을 비롯한 교내 곳곳에 붙여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민주광장 벤치에는 ‘출교’ 처분을 받은 오진호(문과대 한국사03)씨에게 전하는 격려메시지가 만국기 형식으로 게시됐다.

 다음 집회는 내일(25일) 오후 4시 본관 앞에서 열린다. 오는 26일(수) 오후 2시에는 중앙광장에서 ‘징계철회와 총장면담’을 위한 대규모 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이번 사태에 대한 학교측의 추가 입장표명이 없는 가운데 오늘(24일) 오전 9시, 본교출신 현직기자 41명이 출교반대 성명서를 대자보형식으로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학생들의 방법은 잘못됐으나 학교측의 지나친 처사에 실망스럽다'며 '이들을 포용해 올바른 사회인이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학내 사건에 대해 졸업생이 나서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나 학교측은 이번 징계방침결정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고수하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본교출신 현직기자 41명의 성명서>

===존경하는 교수님과 사랑하는 후배들에게 전합니다===

기사 쓰던 펜을 들어 탄원서를 씁니다. 4.18 의거를 기려야할 펜으로 ‘4.19 징계’를 되새기는 글을 씁니다. 교수님과 후배들의 닫힌 마음을 함께 열고자 합니다.

일부 후배들이 병설 보건대생의 총학생회 투표권 인정을 요구하며 아홉 분의 교수님을 대학본관에 가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소수화/급진화 되고 있는 학생운동의 현 주소를 보는 듯 하여 안타까웠습니다. 기사 쓰는 마음도 편치 못했습니다. 그러나 뒤이어 들려온 뉴스는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개교 100년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학내 문제에 연루된 학생들을 출교 조치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학내 언론사 출신의 학생들도 있습니다. 여러 학내 언론사에서 익히고 배워 현직 언론인이 된 저희가 뜻을 모으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주변에선 ‘그 대학에 그 학생, 그 학생에 그 교수’라고 우스개 섞어 빈정거립니다. 누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깊이 따져 묻지 않습니다. 이들에게 이번 사태는 ‘비상식과 몰상식의 총체’입니다. 교수와 학생 모두의 존엄이 함께 추락하고 있습니다. 언론계에 있는 저희는 필부들의 그런 목소리를 가장 먼저 듣습니다. 그 손가락질은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학이 지켜야할 참된 가치가 혼란에 빠진 일은 예사롭지 않습니다.

2006년 4월19일 고대에선 1960년 4월18일을 거스르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고대를 자랑스럽게 여기던 많은 이들의 자긍심에도 상처가 생겼습니다. 학생이 교수에게 대들고, 교수가 학생을 징계하는 일은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제의 관계를 영원히 끊고 대학에 돌아올 마지막 인연까지 잘라버리는 일은 없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훗날 모교로 돌아와 교수님들께 옛 이야기하며 술 한 잔 올릴 기회마저 잃어버렸습니다. 70, 80년대의 ‘말썽꾸러기’ 선배들에게는 모두 허락됐던 일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몰입하는 혈기가 때로 불의에 저항하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뜨거운 가슴에 솔직한 학생들이 있었기에, 그리고 그들의 치기를 넓은 마음으로 품어 안는 교수들이 있었기에, 고려대는 오늘의 명예를 얻었습니다. 개인의 안위에 몰두하기보다는 당대의 모순을 온 몸으로 고민한 교수와 학생들이 오늘의 고려대학교를 일구었습니다.

물론 일부 후배들이 이번 사태 때 보여준 행동은 실망스럽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학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나섰다고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방법’에 대해 우리는 반대합니다. 참된 실천적 지성인은 반대자의 공간까지 허락합니다. 그 반대자가 자신을 탄압하더라도, 그 고통을 인내하면서 더 많은 사람과 대화하려 애쓰는 것이 우리가 이해하는 ‘운동’의 길입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 대한 적개심이 아니라,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운동의 근본입니다. 급진적 행동이 곧바로 현실의 진보를 보증해주진 않습니다. 후배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지혜로운 길을 택하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세상을 탓하기 전에, 왜 세상이 그들을 소수의 궁지에 몰아넣고 있는지 깊이 성찰해 보라고 권합니다.

그러나 대학 당국의 처사는 더욱 실망스럽습니다. 우리는 대학당국이 학내의 평화로운 소통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고 이해합니다. 그러나 학생들을 꾸짖기 위한 그 ‘방법’에 대해 우리는 반대합니다. 출교 조치는 학생들의 사회활동을 근본적으로 가로 막고 그 평생에 지워지지 않는 낙인을 찍는 일입니다. 형법을 어긴 학생에게도 이런 징계를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독재정부가 수많은 학생들을 전과자로 만들던 시절에도, 대학은 학생들과 다시 만날 마지막 끈만큼은 놓지 않았습니다. 출교 조치는 한때의 실수에 대한 꾸짖음으로는 지나치게 가혹합니다. 새롭게 거듭날 최소한의 여지조차 허락하지 않는 징벌은 가르침의 회초리가 아니라 배척의 철조망입니다. 이번 징계가 새로운 소통의 공간을 마련하기보다, 교수 사회와 학생 사회 사이에 더 깊은 불신과 체념의 장벽을 쌓아올릴 것 같아 두렵습니다.

대학은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자 최대의 울타리입니다. 그 속에서 젊고 치기어린 학생들은 찧고 까불며 사상과 실천의 자유로운 방랑을 시작합니다. 침묵하는 양심보다 행동하는 양심이 더 가치 있다는 가르침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실천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참된 학문의 길을 깨우쳐갑니다. 대학을 지키는 것은 교수 사회인 동시에 ‘학생 사회’입니다. 학생들의 탈주와 질주의 에너지가 대학을 풍요롭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때로 그들이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그 조차 끌어안는 것까지가 대학의 사명이자 역할입니다.

출교조치를 받은 7명 학생의 전공은 다양합니다. 국어교육과, 컴퓨터교육과, 지리교육과, 법학과, 철학과, 사회학과 등입니다. 비록 긴 ‘우회로’를 거치더라도, 언젠가 이들이 무사히 학교를 졸업하게 된다면, 아이들을 진정으로 아끼는 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소외된 사람의 인권을 옹호하는 변호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늘진 곳의 아픔을 글로 옮기는 언론인이 될 수 있습니다. 멀지 않은 훗날, 여러 교수님들의 후배가 되어 이 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실은 바로 이런 과정을 거쳐 수많은 졸업생들이 지금 사회 곳곳에서 모교의 명예를 드높이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희 역시 실수와 오류를 스승 삼아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 과정을 너그럽게 지켜보아주신 여러 교수님들 덕분입니다.

이번 사태는 이들이 다시 한번 큰 배움을 얻는 기회가 되는 게 마땅합니다. 관용과 함께 하는 정의를 배우고, 겸손과 함께 하는 실천을 익히며, 세상 모든 이와 함께 하는 진정한 자존을 체득할 기회가 되는 게 옳습니다. 그것이 그들 거칠고 미숙한 학생들의 뜨거운 가슴을 자유/정의/진리의 참된 양분으로 바꾸어 세상에 돌려주는 고려대의 건학 이념에 어울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여러 교수님들뿐입니다. 적대와 분노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힘이 교수님들께 있습니다. 아직도 고대의 뜨거운 가슴을 믿는 젊은 언론인들이 교수님들께 글을 올리는 이유입니다. 많은 고뇌 속에 어려운 결정을 하셨을 어윤대 총장님께 간곡한 편지를 전해 드리는 이유입니다. 그 아량 속에서 학생들도 진심어린 사과와 함께 합리적인 대화의 공간에 다시 나설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봅니다.

철쭉이 만발합니다. 아픔 없이 피는 꽃은 없습니다. 후배들도 지금 아프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꾸짖되 돌아오지 못할 길로 영영 내치지는 말아주십시오. 그들도 이 봄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날 수 있도록, 그 젊음에 어울리는 햇볕 한줄기 허락해 주십시오. 그 곳에서 고대가 다시 태어나 더 건강하고 힘차게 세상을 향해 발언할 수 있습니다. 교수와 학생이 평화롭게 공존하며 대화하는 참 대학의 모습이 고대에서 만발하기를 가슴 깊이 소망합니다. 그 간절함을 증명해 보일 수만 있다면, 이 소망을 함께 하는 더 많은 동문들의 뜻도 계속 모아나가겠습니다.

                                                        2006년 4월24일.

 교수사회와 학생사회의 건강한 소통을 바라는 고려대학교 출신 젊은 언론인 동문 일동.

● 강주화 <국민일보> 기자 (철학 97) ● 고미혜 <연합뉴스> 기자 (영문 99) ● 고재열 <시사저널> 기자 (신방 93) ● 고제규 <시사저널> 기자 (신방 92) ● 고주희 <한국일보> 기자 (정외 94) ● 김병규 <연합뉴스> 기자 (신방 93) ● 김상훈 <문화일보> 기자 (신방 93) ● 김수한 <코리아헤럴드> 기자 (노문 95) ● 김은정 <헤럴드경제> 기자 (영문 94) ● 김지방 <국민일보> 기자 (신방 91) ● 김철원 <광주MBC> 기자 (신방96) ● 김태종 <연합뉴스> 기자 (사회 95) ● 문보경 <전자신문> 기자 (산업공학 95) ● 박경호 <서울신문> 기자 (통계 95) ● 박근태 <동아 사이언스> 기자 (전자공학 93) ● 박신영 <파이낸셜뉴스> 기자 (사회 99) ● 박영하<부산방송PSB> 기자 (신방93) ● 박용주 <연합뉴스> 기자 (국문 95) ● 박종서 <한국경제> 기자(신방 97) ● 서지연 <코리아타임즈> 기자 (영문 94) ● 선근형 <경향신문> 기자 (정외 96) ● 손재권 <전자신문> 기자 (한문 94) ● 심영구<서울방송SBS>  기자 (심리 97) ● 안수찬 <한겨레> 기자 (사회 91) ● 유승호 <한국경제> 기자 (신방 98) ● 육덕수 <기독교방송CBS>기자 (사회 97) ● 이광빈 <연합뉴스> 기자 (농경제 95) ● 이성규 <오마이뉴스> 기자 (농경제 95) ● 이성규 <국민일보> 기자 (노문 94) ● 이순혁 <한겨레> 기자 (철학 94) ● 이용욱 <경향신문> 기자 (신방 90) ● 이율 <연합뉴스> 기자 (심리 97) ● 이종원 <스포츠칸> 기자 (사회 95) ● 이철균 <서울경제> 기자 (정외 92) ● 장창민 <헤럴드경제> 기자 (사회 95) ● 장인수 <세계일보> 기자 (신방 97) ● 정호재 <동아일보사> 기자 (경영 94) ● 조태성 <서울신문> 기자 (신방 93) ● 차윤경 <세계일보> 기자 (역교 97) ● 현윤경 <연합뉴스> 기자 (영교 94) ● 홍희경 <서울신문> 기자 (사회 98) ● 황준범 <한겨레> 기자 (정외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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