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나는 늙어 무섭고 끔찍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초상화는 항상 젊은 모습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것은 결코 6월의 오늘보다 더 늙지 않을 것이다. 그 정반대라면! 그걸 위해라면 나는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을 텐데……. 그걸 위해서라면 난 영혼까지도 바칠 수 있을 텐데!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의 작품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주인공 도리언이 한 말이다. 주인공 도리언은 심각한 나르시시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인물로 그의 나르시시즘으로 인해 옛 애인은 자살을 할 정도다. 나이가 든 후에야 도리언은 자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초상화를 칼로 찢어 참회를 꾀한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하인들은 찢어진 초상화 대신 마룻바닥 위에 죽어있는 늙고 추한 남자를 발견하게 된다. 나르키소스가 연못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연못에 빠진 것과 같이 도리언은 자신과 자신의 초상화를 혼동해 자살한 것이다. 영국 액서터 대학 정신요법학 교수 제레미 홈즈(Jeremy Holms)는 그의 저서 <나르시시즘>에서 극중 도리언은 파괴적 나르시시즘을 앓고 있다고 분석한다.

일반적으로 나르시시즘의 정신분석학적 개념들은 크게 리비도 나르시시즘과 파괴형 나르시시즘, 그리고 건강한 나르시시즘으로 분류될 수 있다.

프로이트(Freud Sigmund)에 따르면 인간은 ‘일차적’ 나르시시즘을 겪는다. ‘일차적’ 나르시시즘은 어린아이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며 즐거워하는 것이다. 또한 프로이트는 인간이 ‘일차적’ 나르시시즘을 겪은 이후 자아 상실감에 빠지게 되면 종종 ‘이차적’ 나르시시즘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고 봤다. ‘이차적’ 나르시시즘은 외부세계로부터 스스로 자신을 격리하는 것을 말한다. 심리학자 로널드 브리튼(Ronald Britton)은 이러한 ‘이차적’ 나르시시즘을 리비도 나르시시즘이라고 정의했다.

정신분석학자 헤르베르트 로젠펠트(Herbert Rosenfeld)는 타인을 병적으로 미워하고 파괴하려고 하며 자신의 존재만을 인정하는 나르시시즘을 파괴형 나르시시즘이라고 정리한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거만하고 이기적이어서 타인을 함부로 대하고 자기 과시적이다. 

건강한 나르시시즘은 앞서 제시한 유형들에 비해 자기 계발적이다. 자기심리학(self - psychology)파 하인츠 코후트(Heinz Kohut)의 분석에 의하면, 건강한 나르시시즘은 인간이 성장하면서 절제된 자기 사랑의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건강한 나르시시즘을 통해 인간은 바람직한 자기 존중법을 습득하고 자신의 상황에 맞는 인생목표를 세워 그대로 이행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이러한 나르시시즘의 유형들은 우리 주변 속 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환상의 커플’의 주인공 안나 조가 그 대표적인 예다. 안나 조는 드라마 속에서 미국 부동산 재벌의 상속녀로 물질적으로 부유한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이후 안나 조는 부모가 사망해 재산을 단독으로 상속받으면서 재산을 노리는 친척들에게 둘러싸여 온갖 아부를 받으며 자라는데, 그 결과 그녀는 유별난 자기애, 즉 나르시시즘에 빠지게 된다. 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이는 남에 대한 공감을 전혀 하지 못하기 때문에 심각한 자기애성(自己愛性) 성격장애를 드러내는 것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걸어다니는 팝아트’ 낸시 랭의 작품에서도 나르시시즘을 엿볼 수 있다. 한 인터뷰에서 낸시 랭은 이렇게 말한다. "내 작품 코드가 나르시시즘이잖아요.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거예요" 이러한 그녀의 작품관은 그녀의 대표작 <터부 요기니>시리즈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낸시 랭은 어린 여자아이 몸체에 로봇 프라모델을 붙이고 로봇의 손에는 자신이 선호하는 명품 백과 명품 화장품 등을 쥐어줌으로써 <터부 요기니>를 만든다. 즉, 낸시 랭은 ‘터부 요기니’를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에 창작의 의의를 둔다. 자기애에 근거한 강한 자신감에서 우러나오는 작품 행위인 것이다.

이임순 서울정신분석상담연구소 연구원은 “예전에는 성이 터부시 돼 프로이트의 성에 관한 담론이 유행했지만 최근에는 성 담론이 개방화 되면서 현재는 개인의 자존감 문제가 더 부각되고 있다”며 “이러한 흐름이 문화적 현상에 반영돼 나타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현대인들이라면 누구나 건전한 자존감을 지키는 문제를 겪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나르시시즘의 발현, 즉 자신의 부족한 점을 건전하게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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